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의 관습을 깨뜨린 작품으로, 이동진 평론가가 놀란의 최고작으로 꼽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영웅담이나 적의 얼굴, 과도한 전투 장면 대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익명의 존재들을 담아냅니다. 전통적인 전쟁 영화와 달리 감정을 크게 흔들기보다 조용하게 압박해 오는 이 작품은, 관객에게 통쾌함이 아닌 무게감을 남깁니다. 본 글에서는 덩케르크가 보여주는 뺄셈의 미학과 익명의 영웅들, 그리고 혁신적인 시간 구조를 심층 분석합니다.
뺄셈의 미학으로 완성된 전쟁 영화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로서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적군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병사들의 전사가 묘사되지 않으며, 전투 장면도 극히 적습니다. 주인공들은 싸워서 이기기보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피하는 '리액션' 위주의 액션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뺄셈의 미학'은 놀란 감독이 전형적인 서사 요소를 끊임없이 발라내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영화는 덩케르크 주택가에서 독일군에게 쫓기는 영국군 병사 토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토미는 목마름에 호숫물을 마시려 하고, 이어지는 총격 속에서 여섯 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습니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화려한 전투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총성과 폭발 장면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 속에 과한 감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의 말이 적어서 더 긴장됩니다. 특히 잔교에서의 폭격 장면은 Z 축을 강조한 방식으로 묘사되어 관객을 폭격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입니다. 화면 전경의 토미를 시작으로 폭탄이 점점 가까워지는 연출은 관객에게도 주인공과 같은 초긴장 상태와 조바심을 느끼게 합니다. 병사들이 폭격 소리를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작되어,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떨어지는 폭탄을 통해 관객이 안전한 구경꾼이 아닌 위협에 직접 노출된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병사들이 바닷가에 서 있는 장면은 병사들의 표정만으로도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를 느끼게 해 줍니다. 독일군의 공격은 누군가를 선택해서 공격하지 않는 '재난'처럼 묘사되며, 영화 속에서 독일군은 비인격화된 존재로 그려져 자연재해에 접한 인간들의 공포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독일의 사악함이나 제국주의적 배경을 전혀 묘사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이는 '덩케르크'가 전쟁 영화를 생명에 대한 거대한 숭고한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살아서 돌아가기 위한 생존 싸움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전통적 전쟁 영화 | 덩케르크의 접근 |
|---|---|
| 적군의 얼굴과 캐릭터 묘사 | 적군은 비인격화된 재난처럼 표현 |
| 영웅적 전투 장면 강조 | 생존을 위한 리액션 중심 |
| 피와 전사 장면 직접 묘사 | 전사 장면 배제, 생명 존중 |
| 감정적 신파와 드라마 | 조용한 압박과 긴장감 유지 |
이름 없는 익명의 영웅들이 전하는 메시지
놀랍게도, 영화 속에서 살아남아 돌아가는 영국 병사 세 명(토미, 알렉스, 깁슨) 중 토미와 알렉스는 영화 내내 이름이 직접 거명되지 않습니다. 깁슨 역시 죽은 영국 병사의 명찰을 사용한 프랑스 병사이므로, 그의 진짜 이름은 영화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는 세 인물 모두 '이름 없는' 익명의 존재로 묘사됨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문스톤 어선의 선장 도슨, 두 청년 피터와 조지, 스핏파이어 조종사 파리어와 콜린스, 그리고 총책임자 볼튼 제독 등이 그들입니다. 이는 영화가 '호명된 사람들이 익명의 존재를 구하는 이야기'임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살아 돌아가는 이야기'라는 핵심 주제를 부각합니다. 영화 초반의 토미와 프랑스군 병사 깁슨의 관계는 중반 이후의 상황을 변주합니다. 토미가 프랑스 병사들에게 구원받으면서도 차가운 시선을 받는 장면은, 깁슨이 영국군 사이에서 겪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며 영국군과 프랑스군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두 병사는 서로에게 물과 음식을 나눠주고 물에 빠진 상대를 구원하는 등 호의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이 영화가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함께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거대한 휴머니즘을 묘사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려는 손길과 이를 보완하는 눈길을 강조합니다. 바다와 하늘, 육지 등 다양한 시점에서 인물들의 생사가 엇갈리는 순간들을 관찰하는 시점 쇼트를 통해 연대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영웅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볼튼 제독, 미스터 도슨, 파리어 같은 인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영웅으로 기록되는 인물은 배리 키오건이 연기한 17살 소년 조지라는 점입니다. 그는 숭고한 마음으로 구조에 참여했지만, 직접적인 공헌 없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는 조지를 영웅으로 호명함으로써, 실제로 전공을 세운 사람이 아닌 '이름 모르게 쓰러져 간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영웅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구조된 병사들이 영국 해안에 도착하여 시민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알렉스는 패잔병으로 돌아온 자신을 부끄러워하지만, 영화는 '살아 돌아온 것 자체도 거대한 축복이다'라며 생명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줍니다. 기차 안에서 토미는 거리의 아이들이 준 신문의 윈스턴 처칠 연설문을 읽습니다. 무명의 존재인 토미가 처칠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어떻게 거대한 '익명의 존재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혁신적인 시간 구조가 만드는 긴장감
'덩케르크'는 복잡한 구조와 플롯을 자랑합니다. 영화는 크게 '잔교와 육지 (일주일)', '바다 (하루)', '하늘 (한 시간)'의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기 다른 시간의 밀도로 진행됩니다. 이는 '인셉션'에서 보았던, 서로 다른 시간 속도가 공존하는 놀란 감독의 특기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세 부분은 각각 세 명의 인물들이 중요하게 묘사되며, 각 파트에서 한 명씩 죽는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 영화는 시간을 나눠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같은 사건이 다른 공간과 시점에서 이어지는데 그 구조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긴장감이 계속 유지됩니다. 특히 배와 하늘과 해변이 교차되면서 하나의 순간으로 모일 때에는 나도 모르게 잠깐 숨을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놀란 감독은 이러한 구조적 사고를 통해 세 가지 상황의 고립감과 절박함을 강조하고, 각기 다른 시간의 질감과 양감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세 가지 시간이 처음으로 만나는 교차점은 콜린스 파일럿의 추락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구조자였던 콜린스가 피구조자로 바뀌는 순간을 보여주며, 구조자와 피구조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서로의 위치에 따라 협력하는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덩케르크'의 거대한 테마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핵심적인 장면입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놀란 감독이 플롯을 복잡하게 꼬는 것이 단순히 있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가장 복잡한 방식으로만 자신의 테마를 말할 수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덩케르크'는 이러한 놀란의 특기가 미학적으로 탁월하게 증명된 작품입니다. 이는 영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미학적, 이야기적 부분들이 모여 '전체가 부분의 총합보다 훨씬 더 큰 영화'를 만들어냄을 의미합니다. 음악과 소리가 계속 쌓이면서 불안이 커지는 연출도 시간 구조와 맞물려 효과를 발휘합니다. 덩케르크는 감정을 크게 흔들기보다 조용하게 압박해 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통쾌함이 아니라 무게감이 남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며, 주인공 토미가 살아남는 유일한 이유는 '우연'이라는 점도 이러한 구조 속에서 더욱 명확해집니다. 폭탄이 가까스로 비껴갔거나, 병과가 다른 줄 사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시간 축 | 기간 | 주요 공간 | 핵심 인물 |
|---|---|---|---|
| 잔교와 육지 | 일주일 | 덩케르크 해변 | 토미, 알렉스, 깁슨 |
| 바다 | 하루 | 문스톤 어선 | 도슨, 피터, 조지 |
| 하늘 | 한 시간 | 스핏파이어 | 파리어, 콜린스 |
'덩케르크'는 뺄셈의 미학으로 완성된 전쟁 영화이자, 익명의 영웅들을 통해 생명의 숭고함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혁신적인 시간 구조는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관객을 생존의 현장 한가운데로 끌어들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놀란의 최고작으로 꼽은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전쟁을 영웅담이 아닌 인간의 생존 의지로 그려낸 철학적 깊이 때문일 것입니다. 덩케르크 작전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4년 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작전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며,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거대한 축복임을 일깨워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덩케르크가 다른 전쟁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A. 덩케르크는 전통적인 전쟁 영화와 달리 적군의 얼굴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전투 장면이나 피, 신파적 요소를 배제한 '뺄셈의 미학'을 사용합니다. 대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익명의 존재들에 집중하며, 전쟁을 재난처럼 묘사하여 생명의 숭고함을 강조합니다.
Q. 영화에서 시간을 세 개로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놀란 감독은 '잔교와 육지(일주일)', '바다(하루)', '하늘(한 시간)'로 각기 다른 시간의 밀도를 설정하여 각 상황의 고립감과 절박함을 극대화했습니다. 이 세 시간축이 교차하며 하나로 모이는 순간, 구조자와 피구조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서로 협력하는 관계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Q. 왜 주인공들의 이름이 영화에서 잘 언급되지 않나요?
A. 살아남아 돌아가는 병사들(토미, 알렉스, 깁슨)의 이름은 영화 내내 거의 거명되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을 익명의 존재로 만들어 '이름 모르게 쓰러져 간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구조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름이 있어 '호명된 사람들이 익명의 존재를 구하는 이야기'를 강조합니다.
Q. 덩케르크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가 있나요?
A. 이동진 평론가는 '덩케르크'의 이면을 다룬 정치 드라마 '다키스트 아워'를 함께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윈스턴 처칠을 포함한 영국의 수뇌부가 덩케르크 작전 당시 어떤 고뇌를 겪었는지를 보여주어, 덩케르크를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QQxnNuQ9pMo?si=RNPcIFxoBJs5ci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