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조커는 한 사람이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거리의 광대 아서가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은 단순한 악당의 탄생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으로 밀려나고 고립되는 개인의 비극을 그립니다. 영화는 일상 속 작은 상처들이 어떻게 한 사람을 절망으로 내몰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오랫동안 불편한 감정과 깊은 성찰을 남깁니다.
사회적 고립과 아서의 심리적 붕괴 과정
아서는 거리에서 광대 일을 하며 노모를 돌보고 코미디언의 꿈을 간직했지만, 웃음이 터져 나오는 병 때문에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직장 동료 랜들에게 받은 총으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당하며,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엄마의 말대로 그는 웃기는 재주가 없어 TV 쇼에서 조롱거리가 되었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자신이 입양되었고 아동 학대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사회 안에서 계속 밀려납니다. 도움을 받을 곳은 줄어들고, 이해받지 못한 채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반복됩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일상 속 작은 상처들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가 더 불편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웃음이 병처럼 튀어나오는 장면들은 슬프면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아서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셋 있었습니다. 총을 준 랜들, 우상이었던 코미디언 머레이, 그리고 토마스 웨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서를 버렸습니다. 랜들은 아서에게 총을 건네준 뒤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그를 배신했고, 머레이는 아서의 코미디를 조롱하며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결정적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피를 따라 하던 아서의 장난은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아서에게 말을 걸고 그의 코미디를 보고 웃어준 유일한 사람이 소피였기에 아서의 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위로를 받으려 소피를 찾아갔을 때, 두려움에 떠는 소피를 보며 모든 것이 망상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게 됩니다.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놓쳐버리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감정 억압이 만들어낸 비극적 변모
엄마는 아서를 '해피'라고 불렀고, 아서는 늘 웃는 광대 분장을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광대 분장을 지우기 전까지 그는 모든 감정을 웃음으로 때웠습니다. 살인 전에는 화를 억누르던 아서가 살인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쏟아내는 모습에서 그의 중요한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주체가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웃는 거 잊지 마'에서 '웃지 마'로 바뀌었던 문구는 아서의 심리 상태 변화를 상징하며, 그가 메시지의 주체를 본인으로 바꾸었음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아서의 춤이 나오면 반드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춤은 아이들 린치, 해고, 살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등 그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영화 내내 멈추지 않는 그의 춤은 웃음으로 범벅된 고통스러운 코미디를 상징합니다. 빛과 어둠이 반복되며 깜빡이는 장면들은 아서가 미쳐가는 심리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살인 전후,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 등 아서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와 일치합니다. 엄마를 죽인 뒤 아서는 환한 빛에 휩싸이며 완전히 미쳐버립니다.
영화는 힘들 때 웃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힘들 때 힘든 티를 내고, 기분 나쁠 땐 기분 나쁘다고 말하며, 슬플 땐 울고, 화가 날 땐 화도 내야 합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전부 웃음으로 때운다면 아서처럼 미칠 수밖에 없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우리는 광대가 아니며, 가면을 벗어던지고 상황에 맞는 감정을 표출해야 합니다. 감정 억압은 개인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결국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계층 갈등과 왜곡된 사회 시스템
영화의 오프닝 뉴스는 광대 복장의 시위대와 부자들을 대변하는 토마스 웨인, 그리고 빈민가와 아서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도시의 쓰레기와 쥐떼 문제를 통해 계층 간의 갈등을 상징하며, 아서의 광대 분장 얼굴이 화면을 채우는 것으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암시합니다. 영화 속 언론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선을 보여줍니다. 시위대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토마스 웨인을 홍보하기 위한 재료로만 사용되며, 빈곤층 페니 플렉스마저 언론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아서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계급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입을 찢는 장면은 브루스 웨인과 연결되고, 거리에 홀로 누워있던 아서의 모습은 토마스 웨인의 최후와 이어지며 브루스 웨인 또한 아서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영화는 사회 약자가 어디까지 내몰릴 수 있는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그리고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서가 처음 살인을 저지른 뒤부터 그의 곁에는 항상 비상구 표시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 비상구들은 진정한 탈출구가 아니었음이 밝혀집니다. 아서는 매 고비마다 멈춰야 할 순간을 놓치고, 결국 조커로 변모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토마스 웨인의 죽음이나 사진의 진위 여부 등 영화 속 현실과 망상의 경계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상황들은 영화 속 아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조커는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놓쳐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을'의 입장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아서처럼 대부분의 감정을 웃음 뒤로 감춰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감정을 억압하지 말고, 사회 시스템이 개인을 고립시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9C3xE4Aie30?si=EhVT1vKR6kVKwoh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