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헌법은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지만, 우리는 과연 진정한 평등 속에서 살고 있을까요? 2015년 개봉한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약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정치, 경제, 언론이 얽힌 권력구조를 냉철하게 파헤친 사회 고발 작품입니다.
정치·경제·언론이 얽힌 권력구조의 실체
영화 <내부자들>은 미래자동차, 신정당, 조국일보라는 이름 아래 현대자동차, 새누리당, 조선일보를 연상시키는 설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장필우 회장, 이강희 주필, 그리고 정치인들이 한 식탁에 앉아 권력과 이익을 나누는 모습은 충격적이면서도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느끼는 긴장감은 바로 이 현실감에서 비롯됩니다. 등장인물들은 단순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그 선택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상황이 점점 커집니다. 안상구는 조직의 말단에서 시작해 손가락이 잘리는 참혹한 경험을 하지만, 결국 복수를 위해 스스로 더러운 게임에 뛰어듭니다. 우장훈 검사 역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로서의 체면을 버리고 그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 성 접대를 받습니다.
영화 속 식탁은 14번이나 등장하며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폐쇄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공간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하며 계획을 수립하는 장소입니다. 장필우 회장의 식탁은 권력욕과 명예, 성욕을 채우는 공간인 반면, 우장훈 검사의 식탁은 정의와 복수를 위한 공간입니다. 이처럼 같은 식탁을 두고도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모습은 정의와 부정의가 결국 한 끗 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라는 무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정의로워지기도 하고 부패해지기도 한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과 민중에 대한 인식
고 김수환 추기경은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바로 조국일보 주필 이강희입니다. 그는 높은 빌딩에서 청와대를 내려다보며 여론을 조작하고, 기업 회장 앞에서 언론과 기업의 관계를 마케팅 파트너십으로 비유합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가 민중을 '개 돼지'라고 칭하는 냉소적인 태도입니다.
이강희는 자신의 언론 공작을 '영화'라고 표현하며, 세상이 자신이 써 내려가는 소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작 단어 몇 개를 바꾸고 대중을 현혹하고 조정하는 언론의 모습, 그리고 그 몇 개의 단어에 휘청이는 대중의 모습은 이강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언론이 권력과 타협할 때,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소홀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영화 개봉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대중은 여전히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합니다. 뉴스 기사 한 줄, 앵커의 목소리에 쉽게 흔들리거나 심지어 남의 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회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민중은 개 돼지'라는 생각이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며, 그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의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강희는 우리 사회를 풍자함과 동시에 감독이 우리에게 겨눈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풍자에 웃음만 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부정을 저질러야 하는 딜레마
영화 <내부자들>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내부자의 고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래자동차 비자금 스캔들을 추적하던 우장훈 검사는 장필우의 계획이 실패하자 그들의 스파이로 전향해 부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과 함께 성 접대를 받으며 검사로서의 체면을 버린 우장훈은 결국 장필우, 오 회장, 이강희의 삼각관계를 밝혀내며 원하는 바를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법을 수호하는 검사가 사회 정의를 위해 스스로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추악한 자들과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성 접대를 받고 나서야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영화 속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지 않은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누가 정의롭다고 말하기도, 누가 완전히 나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기득권층이 쌓은 성벽이 얼마나 높고 견고한지, 마치 트로이 목마처럼 내부로 진입해야만 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과 싸우려면 정의를 위해 부정을 저질러야 하는가?
감독이 영화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에는 입에 담기 힘들 만큼 적나라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등장합니다. 젊은 여성들을 끼고 노는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의 모습과 남성의 성기를 골프채에 비유하며 성적 유희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러한 불편함의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의 장면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깨끗하다고 믿었던 그리고 깨끗해야 한다고 배웠던 정치, 경제, 언론의 본모습이 너무나도 추악하기 때문입니다. 감독의 적나라한 연출 방식은 마치 최대한 정보를 사실대로 보도하는 기자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이는 언론이 사회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영화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영화의 적나라한 연출은 언론의 중요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은 이병헌, 조승우를 비롯해 이경영, 김홍파, 배성우, 조우진, 김의성 등 명품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3시간에 달하는 오리지널 버전을 보면서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강렬한 대사와 빠른 전개, 그리고 '영화 같은 일이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는 공감 때문입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가, 언론이, 경제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지, 우리를 속이고 있지 않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우장훈의 대사처럼 '대한민국 헌법 제1장, 힘 있는 자, 힘없는 자 모두 법 앞에 평등하다. 우리 아들은 그런 나라에서 살아야 되지 않겠나?'라는 바람처럼, 권력의 정의를 깨우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대한민국은 조금이라도 깨끗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qE5oOuTbgB8?si=tB0c0pEYWJwqR7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