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사랑의 본질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 사이에 싹트는 감정은 관찰에서 시작되어 붕괴로 완성되며, 결국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습니다. 이 영화는 직접적 표현 대신 거리와 시선, 상징적 장치들로 애틋한 감정을 전달하며,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수작입니다.
관찰과 사랑: 형사와 용의자 사이의 묘한 긴장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 관찰에서 시작된다는 독특한 전제를 보여줍니다. 뛰어난 엘리트 형사 해준은 직업적 불면증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경직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의 아내 정안은 행복을 '변수가 철저하게 통제되는 조건이 충족된 상태'로 정의하며, 해준에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관계, 저녁 식사 대접 등 특정 행동을 요구합니다. 이는 해준이 정안의 '행복 조건'을 채우기 위해 계속 소모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정안의 이름이 '안정'과 역설적으로 느껴지듯, 해준과 정안의 관계는 안정적이지 못하며 의무적인 섹스 등으로 그들의 경직된 관계가 암시됩니다. 이러한 해준의 불안정한 삶에 '우라늄'과 같은 존재인 서래가 나타납니다. 사망한 시신으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만남은 관심, 즉 관찰을 통해 사랑으로 발전합니다. 서툰 한국말로 남편의 죽음을 표현하며 '마침내' 죽을까 걱정했다고 말하는 서래의 '말실수'는 그녀의 무의식을 드러내며 해준의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해준이 서래에게 평소 아내에게는 제공하지 않던 '특 모둠 초밥'을 사준 것은 이미 해준이 서래를 특별하게 여기고 일탈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즐겨 먹던 일식 대신 볶음밥을 해준 행위 또한 일상에서의 외도를 상징합니다. 해준의 서래 '관음' 장면들은 인상적입니다. 망원경으로 서래를 관찰하는 해준의 야릇한 신음 소리, 그리고 이후 범인 검거 중인 해준을 관음 하는 서래의 침 삼키는 소리는 둘 모두 변태적 시선으로 상대를 탐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박찬욱 감독은 망원경을 든 해준의 클로즈업을 통해 관찰 대상이 해준에게 스며들고 있음을 표현하며, 해준이 서래를 몰래 관찰 중임을 폭로합니다. 또한 해준의 불안정한 삶을 상징하는 불면증 상태에서 서래 집 앞 잠복 중 잠든 모습은 서래 앞에서 무장 해제된 해준의 모습과 그가 서래를 필요로 함을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영화는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그 안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이 흘러가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말은 조심스럽고 눈빛은 길게 이어지며, 사랑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거리나 시선 등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절제된 연출은 오히려 더 애틋하게 느껴지며, 관객들의 마음을 천천히 움직이게 만듭니다.
붕괴와 완성: 자신을 무너뜨리는 사랑의 진실
서래는 해준에게 '패턴을 알고 싶다'는 말을 통해 폰 잠금 해제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을 뺏을 방법을 알고 싶다는 중의적 의미를 던집니다. 서래는 해준의 결혼반지를 보고 자신의 반지 자국을 확인하며 반지를 다시 끼는 행동으로 해준을 탐색하고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해준을 이용하려 했던 서래의 마음은 복잡하지만, 해준의 진심을 느끼며 서서히 사랑으로 물들어 갑니다. 해준이 파도처럼 사랑을 느끼는 타입이라면 서래는 잉크처럼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었던 것입니다. 해준은 서래에게 점차 깊이 빠져들며 고백합니다. 중국 문서라는 구실을 통해 서래에게 문자를 보내고, '내 집으로 와요'라는 서래의 말에 평소와 달리 과속하며 정장으로 갈아입는 모습은 그가 서래를 얼마나 간절히 만나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서래는 해준을 깊이 이해하며, 그의 불면증 원인인 미결 사건들을 파악합니다. 홍산오 사건 당시 해준의 사진을 태워 숙면을 돕고, 자신의 남편 사건 서류까지 함께 태우는 이중적인 모습에서 해준을 위하는 마음과 자신의 비밀을 숨기는 서래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담배는 이들의 관계에서 중요한 도구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해준의 말은 서래를 만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정안이 해준의 담배 냄새를 맡고 '피웠어?'라고 묻는 장면은 '바람을 피웠음'을 암시하는 중의적인 대사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섬세한 언어 활용을 보여줍니다. 간장 튜브를 서래에게 다 짜주는 해준의 모습은 그가 서래에게 정신이 완전히 팔려있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장면입니다. 해준은 서래의 비밀, 즉 그녀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해준은 서래를 찾아가 이별을 통보하며 자신이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완전히 붕괴시켰음을 고백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해준의 사랑의 완성은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해요'라는 대사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서래를 향한 사랑을 보여준 해준의 모습에서 그의 사랑은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핵심은 바로 붕괴를 통한 완성입니다. 주인공들은 선택의 순간마다 서로를 생각하지만 결국엔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항상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힘입니다. 두 사람은 가까워지면서도 동시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으며, 그러한 점이 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 줍니다.
미결 사건: 영원한 사랑을 위한 서래의 결심
해준의 사랑이 끝난 곳에서 서래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서래가 해준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을 무너뜨리고 형사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주려 했던 해준의 모습 때문입니다. 해준은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며 서래 사건으로 인해 평안을 찾지 못합니다. 정안의 '당신에게는 폭력과 살인 사건도 필요하다'는 대사는 살인 사건이 해준뿐 아니라 서래에게도 필요했음을 암시합니다. 영화 후반부는 서래가 주도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조상인 조보낸 장군의 불굴의 의지를 이어받아 폭력에 굴하지 않습니다. 해준에게 그랬듯, 서래 역시 이포에서 해준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두 사람의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시장에서 만난 장면에서 서래가 해준의 구두를 지적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깊은 관심의 표현이며, 소방 경보를 울려 해준을 지켜보는 서래의 모습은 해준이 서래를 관찰했던 모습과 유사하여 둘이 본질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서래에게 '냄새'는 사랑의 조건입니다. 남편 기도수가 자신의 냄새를 맡아주었다고 말하듯, 냄새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정안이 싫어하는 담배 냄새를 해준은 참아내고 서래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털어주는 모습에서 서래는 해준에게서 사랑을 확인합니다. 서래는 홍산오가 '죽을 만큼 사랑했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랑을 이룰 수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녀는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기 위해 바다로 향합니다. 해준이 미결 사건을 잊지 않고 매일 바라본다는 것을 알기에, 서래는 자신을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서래는 떠나기를 위해 땅을 파듯 자신을 위해 땅을 파고 갯벌 안에서 서서히 침전하여 죽습니다.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스며드는 물속에서 서래의 죽음은 그 자체로 미결 사건이 되어 해준의 세계에 영원히 남습니다. 그녀는 영원한 사랑의 방법으로 '헤어짐'을 선택합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해요'라는 해준의 말은 서래에게 자신을 붕괴시키면서까지 상대를 생각하는 절절한 사랑 고백으로 다가왔습니다. 서래는 이 고백을 통해 홍산오처럼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서래는 집에서 녹음된 해준의 말을 듣다 건너뛰기를 합니다. 그리고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 고백인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해요'를 듣습니다. 해준이 짜준 간장 튜브를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서래가 해준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서래가 좋아했던 바다는 때로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다 다시 밀물처럼 들이치듯, 서래의 마음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바다에 휩쓸리듯 위태로웠던 해준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의문을 남기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결말까지 보고 나면 관객들의 마음엔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특히 바다와 안개 같은 장면들은 주인공들의 감정을 대신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며,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천천히 움직이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과거의 차갑고 건조한 작품과는 달리 여전히 아름답고 치밀하게 계산된 대사들로 가득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왜 그가 위대한 감독인지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박해일은 '살인의 추억' 때와는 또 다른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탕웨이는 영화의 중심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며 알 듯 모를 듯한 서래의 태도를 매력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고경표와 김신영 또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김신영은 코미디언으로서의 각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올해 최고의 영화이자 2019년 <기생충>에 버금가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격렬한 베드신 없이도 둘의 사랑은 그 이상으로 격렬하며, 영화 속 드라마 장면은 서래가 자신의 상황과 드라마를 동일시하는 중요한 복선입니다. 해준의 대사를 드라마 대신 따라 했을 때, 서래는 붕괴를 통해 완성되는 사랑을 깨달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헤어질 결심'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서래는 그 사랑 고백처럼 폰을 바다에 버리듯 자신을 바다에 버렸고,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했습니다. 해준은 바로 발밑에 있는 서래를 찾지 못하고, 영화는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마무리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헤어질 결심>에서 박찬욱 감독이 보여주는 사랑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박찬욱 감독은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관찰, 거리, 시선, 상징적 장치들을 통해 전달합니다. 특히 '붕괴를 통한 완성'이라는 독특한 사랑의 방식을 제시하며, 자신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상대를 지키려는 모습이 진정한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는 말은 조심스럽고 눈빛은 길며,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감정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Q. 영화에서 담배와 바다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담배는 해준과 서래의 만남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것은 서래를 만나고 싶다는 의미이며, 정안의 '피웠어?'라는 질문은 바람을 피웠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다는 서래의 예측 불가한 감정을 상징하며, 썰물과 밀물처럼 변화하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최종적으로 바다는 서래가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는 장소로 기능합니다.
Q. 서래가 마지막에 바다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서래는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기 위해 바다로 향합니다. 해준이 미결 사건을 잊지 않고 매일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을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만들어 영원히 그의 기억 속에 남고자 했습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해요'라는 해준의 사랑 고백을 실천하듯, 서래는 자신을 바다에 버려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완성합니다.
Q. 영화에서 해준과 정안의 관계는 어떻게 묘사되나요?
A. 해준과 정안의 관계는 겉으로는 안정적이지만 실제로는 경직되고 불안정합니다. 정안은 행복을 통제 가능한 조건으로 정의하며 해준에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관계, 저녁 식사 등을 요구합니다. 이는 해준이 정안의 '행복 조건'을 채우기 위해 소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무적인 섹스와 경직된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가 형식적임을 암시하며, 결국 정안 역시 이 주임과의 관계를 통해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tNyYduK9ZZc?si=MKunZvIsJ3bnesy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