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한 여성이 겪는 극단적인 상실과 그 이후의 정신적 방황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남편과의 사별 후 아들 준이를 데리고 밀양으로 내려온 주인공 신애는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비극의 서사를 넘어, 인간이 고통 앞에서 선택하는 믿음과 그 믿음이 무너질 때의 절망, 그리고 그 너머의 회복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상실과 믿음: 신애가 선택한 종교적 위안
신애는 밀양에 정착한 후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평범한 일상을 꾸려가려 합니다. 하나뿐인 아들 준이를 웅변 학원에 보내고, 카센터 사장 종찬의 도움을 받으며 서서히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러나 웅변 학원 원장 도섭에 의해 준이가 유괴되고 결국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신애의 삶은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준이의 죽음 이후 신애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립니다. 사망 신고를 하러 간 구청에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소지품을 바닥에 쏟아버리는 장면은 그녀의 정신적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신애가 발견한 것은 종교였습니다. 교회 현수막의 "뭉쳐 있는 마음을 부어지게 해 주옵소서"라는 문구를 본 후 기도회에 참석한 신애는 처음으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감정의 출구를 찾게 됩니다.
약사는 신애에게 "세상 모든 일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라고 말하며 지속적으로 전도를 시도했고, 결국 신애는 강한 신앙심을 갖게 됩니다. "저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됐어요"라는 그녀의 고백은 종교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신애는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겉으로는 평화를 찾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혼자일 때면 여전히 준이의 기억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종교적 위안이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영화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관객이 그 무게를 직접 느끼도록 만듭니다. 신애가 믿음에 기대 보려는 선택은 극단적인 상실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동시에 그 믿음이 진정한 치유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용서의 역설: 하나님이 먼저 용서한 가해자
신애는 생일 파티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도섭을 찾아가 용서하겠다는 것입니다. "용서해 주려고요.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 주라고 하셨잖아요"라는 그녀의 말은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목사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우려하지만, 신애는 오래 생각한 결정이라며 교도소로 향합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도섭과의 접견은 신애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안겨줍니다. 도섭은 "정말 고맙습니다. 이 교도소에 들어온 뒤로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됐습니다"라며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합니다. 신애가 용서를 하기도 전에 가해자가 먼저 신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종교적 믿음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습니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라는 신애의 절규는 종교적 용서의 개념이 가진 역설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의지는 무시된 채, 가해자가 신앙을 통해 먼저 구원받는 상황은 신애에게 두 번째 배신으로 다가옵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용서는 누구의 권리이며, 종교적 구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섭은 "주의 어머니를 위해서도 항상 기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라며 오히려 신애를 위로하려 하지만, 이는 신애에게 더 큰 모욕으로 느껴집니다. 사용자의 지적처럼 믿음에 기대 보려는 선택과 그 이후에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리적 과정입니다. 신애는 이 만남 이후 완전히 무너지며, 종교에 대한 신뢰를 잃고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듭니다.
자아 회복: 거짓말과 복수를 넘어선 진정한 치유
도섭과의 만남 이후 신애는 다시 지옥 같은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피아노 학원 운영도 팽개치고 하루 종일 누워 있던 그녀는 급기야 종교 집회장에서 노래 테러를 벌입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라는 반복되는 가사는 종교에 대한 그녀의 분노와 배신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신애는 마치 신에게 복수라도 하듯 죄악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레코드 가게에서 CD를 훔치고, 자신을 교회로 끌어들인 약사의 남편인 장로를 유혹하려 시도하는 등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이어갑니다.
종찬과의 저녁 약속 자리에서 신애는 "김사장님도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섹스"라고 묻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존엄마저 잃어버린 그녀의 처참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종찬은 "왜 이랍니까? 정신 좀 차리소. 좀 제발"이라며 분노를 터뜨리지만, 신애는 이미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결국 그녀는 집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감행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이라고 외치며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신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비로소 멈춥니다.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신애는 미용실에서 우연히 도섭의 딸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만남은 너무도 잔인한 우연이지만, 동시에 신애가 과거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왜 날 이 집에 데려왔어요? 왜 하필 이 집이냐고요? 왜 하필 오늘 하필 이 집이냐고요?"라고 종찬에게 따지는 신애의 모습에서, 그녀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신의 계획이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옷가게 사장이 신애의 조언대로 인테리어를 바꿔 장사가 잘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신애가 여전히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상기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는 미용실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머리를 자릅니다. 종찬은 말없이 거울을 들어주며 그녀를 지켜봅니다. 이 장면은 신애가 더 이상 타인이나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로 거듭났음을 상징합니다.
사용자의 말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 한쪽이 계속 무겁게 남습니다. 하지만 그 무거움 속에서 신애가 찾아낸 희망의 햇살은 진정한 치유가 외부의 위안이 아닌 내면의 회복에서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영화 '밀양'은 상실, 믿음, 용서, 그리고 회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요구합니다. 신애가 겪는 감정의 변화는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큰 사건보다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 이 작품은, 인간이 절망을 넘어 스스로를 회복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걸작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k9hIvX_G2A0?si=rWcVnTm3MHnjL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