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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랫폼 해석 (계급사회 은유, 333층 상징성, 자본주의 비판)

by sbl14 2026. 1. 24.

더 플랫폼 해석 (계급사회 은유, 333층 상징성, 자본주의 비판)
더 플랫폼 해석 (계급사회 은유, 333층 상징성, 자본주의 비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플랫폼>은 스페인발 디스토피아 스릴러로, 수직 구조의 감옥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200층 이상으로 구성된 홀에서 위층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시스템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영화는 잔혹한 장면들로 가득하지만, 진짜 충격은 사람들의 태도와 선택에서 나옵니다.

계급사회 은유로 본 홀의 구조와 인간 본성

영화 속 홀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주인공 고랭은 학위를 받기 위해 6개월간 이곳에 자원입소했고, 룸메이트 트리마가씨는 TV를 창밖으로 던져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을 죽인 죄로 들어왔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들어온 수감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희망하는 물건을 한 개씩 들고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랭은 '돈키호테'라는 책을 선택했고, 이는 이상주의자로서의 그의 성격을 암시합니다.

홀의 배급 시스템은 명확합니다. 하루 한 번, 파란불이 켜지면 자기 부상 플랫폼이 내려오고 2분간 식사가 허용됩니다. 문제는 위층에서 먹다 남긴 음식만이 아래층으로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지하 48층에 배정된 고랭 위로는 47개 층, 94명이 먼저 음식을 먹습니다. 트리마가씨는 게걸스럽게 먹었지만 고랭은 과일 한 개만 챙겼습니다. 그리고 2분이 지나자 층은 엄청나게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을 담아두려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었습니다.

영화는 극단적인 상황처럼 느껴지지만, 보다 보면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 층에 있는 사람들은 공평함을 말하면서도, 막상 자기 차례가 오면 쉽게 욕심을 부립니다. 한 달이 지나면 층이 재배치되는데, 고랭과 트리마가씨는 무려 지하 171층으로 떨어졌습니다. 171층에는 음식의 흔적조차 없었고, 트리마가씨는 결국 인간의 길을 포기합니다. 영화는 잔인한 장면보다 사람들의 태도와 선택에 더 집중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불안을 차분하게 드러냅니다. 시스템 안에서 높은 층이라는 권력이 주어지면 놀랍게도 아래층 사람들의 상황은 자신과 무관한 것이 되는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너무 현실적입니다.

333층 상징성과 천사의 메시지

영화 중반, 시설의 관리자였던 이모그리가 고랭의 새로운 룸메이트가 됩니다. 그녀는 홀이 200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만 잘 분배하면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모그리는 플랫폼이 도착하면 접시 위의 음식을 분배하고 난 후에야 먹었으며, 그마저도 강아지와 나눠 먹었습니다. 그녀는 아래층 사람들을 설득하며 연대를 강조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지친 고랭은 결국 아래층 사람들을 협박하며 강제로 연대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모그리조차 몰랐던 진실이 있었습니다. 25년간 홀의 직원으로 있었던 그녀는 홀이 몇 층까지 있는지도 정확히 몰랐고, 16세 미만의 소녀인 미하루의 딸이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관리자들조차도 정작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설정입니다. 관리자들은 합리성과 이성만 있다면 잘 굴러갈 시스템이라고 계산했겠지만, 구성원들이 허기와 불균등 앞에서 비합리와 비이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계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고랭과 바라스가 모든 사람에게 배식을 하며 내려간 곳은 지하 333층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한 층에 2명, 총 666명이 홀에 있는 것입니다. 666은 서양 신학에서 악마의 숫자로 알려져 있어, 홀이 곧 지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333은 재미있게도 천사 혹은 천사의 메시지로 불리는 숫자입니다. 누군가가 계획을 실천 중 333을 보게 된다면 계획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천사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관리자들이 있을 가장 높은 층이 아닌 가장 아래층인 333층이 천사의 메시지라는 점은 시청자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게 남깁니다.

자본주의 비판과 설국열차와의 유사성

<더 플랫폼>을 보면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떠오릅니다. 커티스와 꼬리칸 사람들이 음식과 부유함으로 가득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처럼, 홀 속 모든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려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무엇도 아닌 생존을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더 플랫폼>이 더 지독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홀의 수감자들은 자신 외에 다른 332명의 재소자를 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맹점은 이들에게 선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으로 도착하는 음식의 양을 보면 절대 두 사람이 2분 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욕심을 줄이고 생존할 수 있는 영양분만 공급한다면 하루 또는 이틀을 버티면 수감 기간 동안 모두가 무사히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명백한 사실과 분명 위아래 층이 소통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위층이라는 권력이 주어지면 탐욕과 무자비를 끝없이 보여주고 낮은 층으로 향하면 무기력하게 당합니다.

바꿔 말해 <더 플랫폼>은 우리 사회, 플랫폼은 자본주의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고랭과 바라스는 현자의 조언을 따라 관리자들에게 수감자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디저트를 지키며 내려갑니다.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삶을 포기한 사람들도, 인간성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마침내 333층 침대 아래에서 미하루가 그토록 찾던 어린 딸을 발견하지만, 플랫폼은 위가 아닌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설국열차>, <기생충>, <더 플랫폼>과 같은 영화들은 다른 서사 속에서도 메시지는 한결같습니다. 구조의 문제,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인간의 선택입니다.

<더 플랫폼>은 다 보고 나면 속이 개운하기보다는, 한동안 생각이 멈추지 않는 영화입니다. 열린 결말은 다소 고구마스럽지만, 영화가 끝나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추천합니다. 다소 자극적인 장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이 영화는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인물 설정은 직관적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대사와 물건, 인물이 나오면서 단순하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온갖 의문과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Pf-ODNk-2X4?si=j8NllwSWZ8mayjY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