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나이브스 아웃을 보기 전까지 요즘 추리영화들이 너무 무겁고 어둡게만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년 라이언 존슨 감독이 내놓은 이 작품은 고전 추리소설의 문법을 빌려오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화입니다. 할런 트롬비라는 추리소설 작가가 자신의 85번째 생일 파티 다음날 목을 그은 채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반전구조
일반적으로 추리영화는 범인을 끝까지 숨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관객에게 사건의 전말을 상당 부분 보여주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간병인 마르타가 약물을 잘못 투여했다고 착각하고, 할런이 그녀를 위해 자살을 위장하는 과정을 비교적 일찍 공개하는 구성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따로 있었습니다. 마르타가 실수로 할런을 죽였다고 믿었던 관객들은 후반부에 가서야 진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마르타는 자신의 촉각으로 올바른 약을 투여했고, 진짜 범인은 랜섬이었다는 것이죠. 랜섬은 마르타가 상속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치료제와 모르핀의 위치를 바꿔놓았지만, 숙련된 간병인인 마르타의 본능적 감각을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는 마르타의 죄책감과 할런 가족의 탐욕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관객을 교묘하게 오도합니다. 혈액 검사 보고서가 할런에게 모르핀 과다 투여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순간,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집니다. 랜섬은 이 보고서를 없애기 위해 검시소에 불을 지르고, 프랜을 모르핀 과다 투여로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구조는 단순히 범인 찾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선의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보여주는 장치였습니다.
캐릭터분석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각 인물이 가진 이중성입니다. 트롬비 가족은 마르타를 가족처럼 대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녀의 출신 국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에콰도르 출신이라 하고, 다른 이는 브라질이라고 말하는 식이죠. 제가 영화를 보면서 특히 현실적으로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월터는 할런의 소설을 독점 출판하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도, 할런이 넷플릭스 영화화를 반대하고 출판사 계약을 끊겠다고 하자 크게 동요합니다. 린다는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할런의 백만 달러 지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남편 리처드는 외도를 하면서도 태연하게 가족 행세를 합니다. 조니는 할런에게 이중으로 생활비를 받으면서도 딸 메그의 학비 문제로 추가 지원을 요청하죠.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랜섬이 가장 솔직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가족의 돈에 기생하며 산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할런과의 대립도 숨기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그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위선적인 다른 가족들과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반면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습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코믹 요소가 아니라 그녀의 본질적 선량함을 상징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 설정은 자칫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트롬비 가족의 거짓된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효과적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녀는 할런에게 단순한 간병인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였고, 할런 역시 그것을 알기에 전 재산을 그녀에게 남긴 것입니다.
사설탐정 블랑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고전 추리소설의 명탐정 같은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처음부터 마르타의 구두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그녀가 연루되었음을 알았지만, 그녀의 선량함을 믿고 진실을 밝히는 쪽을 선택합니다.
사회풍자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이 영화를 보니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라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습니다. 트롬비 가족은 이민자 출신 마르타를 가족이라 부르면서도, 유산 상속 문제가 불거지자 즉시 그녀의 어머니가 불법 체류자일 가능성을 들먹이며 협박합니다. 제가 봤을 때 이 장면들은 미국 중산층의 위선을 정확히 꼬집고 있었습니다.
영화 곳곳에 깔린 복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할런이 랜섬에게 했던 "너는 네가 뿌린 씨앗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말은 결국 랜섬의 결말로 이어집니다. 할런이 창밖으로 던진 야구공은 나중에 린다의 손에 들어가고, 그 공에 적힌 메시지 덕분에 그녀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솔직히 이런 디테일들은 한 번 볼 때는 놓치기 쉽지만, 다시 보면 감탄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정치적 성향도 흥미로운 소재로 쓰입니다. 트롬비 가족은 이민자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지만, 정작 본인들의 이익이 걸리면 그 입장은 쉽게 바뀝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모순이죠. 제 생각에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여냈기에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영화는 마르타가 발코니에서 트롬비 가족을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녀는 할런의 머그잔을 들고 있고, 가족들은 그녀를 올려다봅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권력의 역전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합니다.
나이브스 아웃은 추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동생들에게 바로 추천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무거운 살인사건을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어둡지 않고, 적절한 유머와 풍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번 보고 끝내기보다는 디테일을 음미하며 다시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을 좋아하시거나 클래식한 추리물에 관심 있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